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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ily)

물건너온 바람의 맛, 일본 오키나와 전통 증류주인 류큐 아와모리 '즈이센 오모로' 맛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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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직접 구입해서 마셔본 일본 오키나와의 전통 증류주, 바로 류큐 아와모리 ‘즈이센 오모로(瑞泉おもろ)’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8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깊은 향과 부드러움,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오키나와의 시간과 문화. 단순히 술 한 잔이라기보다는, 그 나라의 바람과 공기, 역사까지 함께 마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모로(おもろ)’는 오키나와 사투리로 ‘생각하다, 그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동시에 류큐 왕국 시대의 궁중 연회에서 불려졌던 고대 가요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즈이센(瑞泉)’은 오키나와에서도 꽤나 전통 있는 양조장이죠. 이 두 이름이 합쳐진 ‘즈이센 오모로’는, 단지 오래된 술이 아니라 류큐의 정신과 정서를 담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병은 묵직하고, 도자기 항아리에서 18년 숙성된 구스(古酒, 오래된 술) 답게 골동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손에 올리게 됩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향은 정말…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숙성된 고급 위스키의 향기와도 닮았지만, 거기에 발효된 쌀 특유의 구수함, 바다 바람 같은 짠내 한 방울, 그리고 살짝 과일의 달콤한 노트까지 섞여 있습니다. 이건 코로 먼저 마시는 술입니다.

 

18년간의 숙성을 거쳐 깊은 풍미와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아와모리로, 그 명성에 걸맞게 가격도 상당하더군요.
대략 14,000엔 정도 됐으니, 나름 가성비 괜찮은 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와모리의 특성상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특히 18년 숙성된 제품은 희소성이 높아 실제 가격은 좀 더 높아져있을 수 있습니다.


 

아와모리는 일반적인 일본 사케와 다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증류주’라는 점인데,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오직 오키나와에서만 사용하는 ‘흑누룩’ 때문이에요. 보통의 누룩보다 훨씬 많은 구연산을 생성하는 이 흑누룩은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잡균의 번식을 막고, 깊고 풍부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즈이센 오모로는 이 흑누룩으로 만든 모로미를 단식 증류기로 증류합니다. 단식 증류는 1회만 증류하기 때문에, 원재료인 쌀의 향과 풍미가 고스란히 술에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와모리를 처음 마시는 분들은 위스키처럼 ‘화~’한 느낌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구수한 풍미에 놀라실 수 있어요.

잔에 따르면, 술빛은 맑고 투명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향을 맡으면 바닐라와 코코넛, 구운 쌀떡 같은 고소함, 그리고 끝자락에 살짝 감도는 캐러멜 같은 달콤함이 느껴집니다. 향만으로도 벌써 이 술이 왜 명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예요.

첫 모금, 천천히 입에 머금었습니다. 43도라는 알코올 도수가 무색하게, 혀끝에 닿는 순간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목으로 넘기면 알코올의 존재감이 뒤늦게 올라오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묵직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쌀의 풍미와 함께 은근한 단맛이 어우러져 정말 ‘시간이 담긴 술’이라는 말이 실감 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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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이센 오모로는 단독으로 마셔도 훌륭하지만, 음식과도 정말 잘 어울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담백한 회와 함께 페어링 해봤는데요, 특히 흰살생선과의 궁합이 탁월했습니다. 고등어나 청어처럼 기름진 생선과도 잘 맞지만, 미묘한 향을 더 즐기고 싶다면 자극적이지 않은 안주를 추천드려요.

또 하나 놀랐던 건, 고급 치즈와도 궁합이 좋았다는 점입니다. 고르곤졸라처럼 진한 블루치즈와 함께할 때, 오모로의 부드러운 바디감과 치즈의 풍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더군요. 일식뿐 아니라 양식과도 어울릴 수 있는, 정말 유연한 술입니다.
그 깊이와 부드러움은 시간의 힘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증류주가 알코올의 날카로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반면, 이 술은 마치 부드러운 비단처럼 혀를 감싸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2~3잔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잔잔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둘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요. 단순히 술을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시간과 기억, 사람들의 손길이 스며든 무언가를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즈이센 오모로는 맛도 훌륭하지만, 그 스토리와 상징성까지 갖춘 술입니다.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후 기념품으로, 혹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친구에게 선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습니다. 병 디자인도 클래식하면서 고급스러워서 술장에 하나 놓기만 해도 공간이 격이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좋은 술은 천천히, 그리고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즈이센 오모로는 단순한 주류가 아닌, 문화와 시간이 응축된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진한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분명 그 가치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술을 통해 오키나와라는 지역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건 덤이겠죠.

다가오는 특별한 날, 조용한 밤에 향 하나로 마음을 데우고 싶다면, 즈이센 오모로 한 병,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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